AI에 코딩을 맡기기 시작한 뒤로 ④ — AI를 쫓아가며, AI와 함께 배운다
AI 적응기 (4부작)
- 여러 도구를 써보고, 결국 직접 만들기까지
- AI와 '일하는' 시스템 — 엔지니어링과 검증 오너십
- AI 서버가 죽으면 나도 바보가 된다 — 로컬 LLM과 AI 의존
- AI를 쫓아가며, AI와 함께 — 배움의 방식까지 바뀌다 ← 지금 읽는 글
시리즈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. 도구를 갈아타고(1편), 일하는 방식을 시스템으로 굳히고(2편), AI 의존과 마주했다(3편). 마지막 편은 그 변화가 결국 일터 바깥, 배우는 방식까지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. 그리고 그 전에, 미뤄둔 고백 하나를 먼저 해야겠다.
패러다임은 며칠 단위로 갈아엎어진다
1편에서 도구 사용에 종착지가 없다고 했는데, 그건 도구만의 얘기가 아니다. 일하는 방식의 패러다임 자체가 길어야 며칠에서 몇 주 단위로 바뀐다. 흐름을 거칠게 적으면 이렇다.
프롬프트 엔지니어링 → 컨텍스트 엔지니어링 → 하네스 엔지니어링 → 루프 엔지니어링 → 골(Goal) 프롬프팅.
처음엔 "어떻게 물어볼까"가 전부였다. 곧 "무엇을 맥락으로 줄까"로 무게중심이 옮겨갔고, 다시 "모델 위에 어떤 실행 구조를 얹을까"(1편에서 폭망한 그 하네스), 그다음엔 "어떻게 자동으로 돌게 할까", 그리고 "목표만 던지면 알아서 도달하게 할까"로 정신없이 휩쓸려 갔다. 다음이 무엇일지는 모른다.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—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최대한 따라붙는 것 자체가 핵심이다.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. 그저 뒤처지지 않게 이를 악물고 쫓아가며, 그 안에서 내 능력을 키워가는 수밖에 없다.
고백 — 이 블로그도, 이 글조차 AI가 썼다
경계가 사라진다는 2편의 이야기는, 사실 내가 직접 살고 있는 현실이다. 백엔드 개발자인 내가 이제 프론트엔드 코드를 AI에게 시켜 찍어내고, 디자인까지 일부 만들어낸다. 앞으로 이 경계가 어디까지 사라질지 나도 궁금하다.
그 증거가 바로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것이다. 이 블로그 자체를 AI가 주도해서 만들었다. 나는 전반적인 방향성과 오케스트레이션만 맡았다. 더 솔직히 말하면,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조차 AI가 정리하고 써준 것이다. 나는 단지 검토만 할 뿐이다.
하지만 이 '검토'라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능동적인 일이다. AI가 써 내려간 초안을 읽으며 빠뜨린 부분을 보강하고, 사실이 어긋난 대목을 잡아낸다. 기억이 흐릿한 곳은 AI에게 과거 작업 로그를 뒤지게 해 근거를 찾는다 — 2편에서 옵시디언에 쌓아둔 그 기록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. 찾아낸 사실이 내 기억과 어긋나면 기억 쪽을 고치고, AI가 그럴듯하게 잘못 적어둔 대목은 내가 바로잡는다. 모르는 건 추측으로 메우지 않는다. 확인될 때까지 비워두고, AI와 토론해 원리를 이해한 뒤에야 글에 적는다. (2편에서 말한 자료 조사를 서브에이전트에게 맡긴 것도, 이 분업의 일부다.)
그래서 이건 '맡기면 끝'인 일이 결코 아니다. '여긴 더 풀어 써라, 이 근거를 찾아와라' 같은 주문을 일일이 짚다 보면, 한 편을 다듬는 데만도 시간이 꽤 든다. 한 번에 완성되는 글은 없다 — 초고를 받아 고치고, 다시 읽고 또 고친다. 개발로 치면 한 방의 빌드가 아니라 수십 번의 반복(iteration)이고, 글쓰기로 치면 끝없는 퇴고다. 형편없는 초고에서 고쳐 나가는 그 과정이, 결국 글쓰기의 본체다. 그래도 그렇게 한 줄 한 줄 짚어 가며 읽는 동안 내가 몰랐던 디테일까지 챙기고, 내가 했던 작업과 지식을 다시 복습하게 된다. 검토에 쓰는 시간이, 마냥 비용만은 아닌 셈이다. AI가 글을 다 써준다는 게 묘하긴 하지만, 지금 이 상황이 나는 꽤 만족스럽다.
이렇게 검토에 적잖은 시간이 드는데도 글쓰기를 놓지 않는 이유는, 결국 속도에 있다. 예전엔 블로그 글 하나를 쓰는 데 하루나 며칠이 꼬박 걸렸다. 글을 쓰기 전에 올바른 정보를 찾고 사실을 조사하는 시간만 해도 만만치 않았고, 그러다 지쳐 결국 쓰다가 포기하기 일쑤였다. 지금은 그 조사 시간이 극적으로 줄었다. AI가 자료를 끌어오고 근거를 짚어주니, 글 쓰는 속도가 통째로 빨라졌다 — 특히 기술적인 글일수록 더. 그래서 앞으로 내가 아는 지식을 이 블로그에 전부 녹여보기로 결심했다. 이 시리즈가 그 첫걸음이다.
책을 읽는 법까지 바뀌었다
변화는 코드와 글에서 멈추지 않았다. 어느 순간부터 책도 AI와 함께 읽기 시작했다. 그러자 읽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. 마치 중·고등학생 때 국어 수업을 듣듯, 모든 문장과 모든 상황을 분석하며 읽게 됐다. 그냥 눈으로 흘려보내던 문장을, 이제는 "이건 왜 이렇게 썼을까"를 AI와 주고받으며 곱씹는다.
시는 더 극적이었다.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시를 왜 읽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. 그런데 AI와 함께 시를 읽고 토론하면서, 비로소 시를 읽는 이유를 깨달았고, 시를 읽기 시작했다. 물론 이것도 국어 공부하듯 한다. 한 구절을 붙잡고 내 식대로 해석한 다음 "이렇게 읽는 게 맞아?" 하고 AI에게 묻는다. AI가 맞다고 말해주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, "그럼 내 해석의 허점을 비판적으로 짚어줘"라고 되묻는다. 그렇게 한 연을 두고 한참을 주고받다 보면 시 한 편에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. 긴 시간을 시 한 편에 몰두하는 나를 보며,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. 이 변화가 나를 데려간 곳들은, 언젠가 취미 기록에 따로 풀어볼 생각이다.
AI가 단순히 효율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, 내가 평생 닫아두었던 문 하나를 비로소 열어준 셈이다. 이건 생산성 지표로는 잡히지 않는 변화다.
그래서, 처음의 두려움으로 돌아가면
이 시리즈는 두려움에서 출발했다. 1편의 '내 자리가 사라질까'라는 대체의 공포, 그리고 3편의 'AI가 없으면 나는 바보가 되나'라는 의존의 공포. 둘 다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. 다만 그 두려움을 통과하며 내가 도달한 자리는, 처음 출발한 자리와는 분명히 다르다.
대체의 공포는, AI 덕에 내가 다룰 수 있는 일이 오히려 폭증하며 생긴 다른 종류의 피로로 바뀌었고, 의존의 공포는 검증과 기록과 원리 이해라는 시스템으로 조금씩 메워지고 있다. 그 사이 나는 직접 코딩을 멈췄다가, 검증의 오너십을 쥐었고, 스킬을 직접 만들었고, 모델 밑단까지 손을 댔고, 시를 읽기 시작했다.
그래서 지금, 지난 시간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.
AI 시대에, AI를 쫓아가며, AI와 함께 내 능력을 키우려 애쓴다.
이것이 지금까지 AI를 다루며 내가 얻은 깨달음의 전부다. 정답은 아직 모른다. 패러다임은 또 며칠 만에 바뀔 거고, 나는 또 도구를 갈아타고 또 한 번 폭망할 것이다. 그래도 괜찮다. 쫓아가는 동안 나는 분명히 자라고 있으니까. 그 자람의 증거로, 이 글을 — AI와 함께 — 남겨둔다.
AI 적응기 시리즈는 여기서 끝납니다.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다면 ① 도구 변천기로.